[차장 칼럼] '슬픔의 정치화'와 결별하기

입력 2023-04-06 17:56   수정 2023-04-07 00:34

4월과 5월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유독 많았다. 제주 4·3 사건을 시작으로 4·16 세월호 참사, 5·18 민주화 운동을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인 5월 23일까지 이어진다.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은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나 이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과오도 되새겨야 슬픔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가 현재의 정치에 영향을 줘서는 곤란하다. 올해 4·3 사건 추모제에 지도부가 총출동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오지 않았다”며 거센 비판을 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4·16, 5·18 등 줄지은 추모를 통해 정권 반대 목소리를 결집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적 이득 위한 과거 소환
이는 제사의 격식을 놓고 국력을 낭비한 조선시대의 예송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모 방식을 문제 삼고, 비극이 발생한 과거의 상황에 지금의 정적을 등치시켜 증오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망자들을 오늘에 소환하는 행위는 당면한 현안 해결에 사용해야 할 정치 자원을 의미 없이 소모시킨다.

이 같은 낭비를 멈추려면 여권부터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일부 인사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과거사를 이용하는 한 윤 대통령이 광주나 제주를 몇 번이고 찾아 화해를 시도하더라도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김일성의 지시로 4·3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남로당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직접 4·3 사건을 주도했다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정치적 세력 확대를 위해 역사를 이용해선 안 된다. 태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경선 초반 최약체로 꼽혔다. 4·3 발언을 통한 지지세 결집이 없었다면 승부를 뒤집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달 가까이 국민의힘을 내홍에 빠뜨리고 있는 전광훈 목사 논란도 김재원 최고위원이 특정 정치 성향의 신도들이 모인 예배에 참석해 5·18 관련 발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보수 일각의 ‘반(反)5·18 정서’에 기대려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당면 현안 해결에 집중해야
민주당 역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명목으로 지지자를 결집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5·18 당시 헬리콥터 사격과 암매장 시신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을 스타로 만든 1989년 청문회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기소를 위한 1995년 검찰조사,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도 더 규명해야 할 ‘진실’이 더 남아 있다는 주장이었다. 적폐로 몰리던 보수세력에 대한 국민의 증오를 부추기려는 시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활동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규명해야 할 진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공을 들이고도 밝히지 못한 진실이라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허상일 가능성이 크다.

정권이 교체된 뒤 처음 맞은 4월이다. 연금개혁, 경제 위기 대응 등 당면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추모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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